서교동 근린생활시설 리모델링 | Vertical A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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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amsun Lee



서교동 근린생활시설 리모델링, 버티컬 아크 | Vertical Arc

2023 한국리모델링건축대전 대상 (국토교통부 장관상) 수상작


친숙한 모퉁이 건물의 낯선 건축적 유산

건축보다 간판이 눈길을 사로잡는 한국의 거리들, 그 중에서도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 역 인근의 거리들은 수많은 상점들의 간판전쟁으로 건축물의 맨 얼굴을 보기 힘든 서울의 대표적 번화가 중 하나다. 그 중 서교동 이면도로 모퉁이의 길고 얕은 필지, 편의점, 주점, 음식점 등 가장 문턱이 낮고 경쟁이 심한 상점들로 채워진 근린생활시설을 매입한 클라이언트는 이 1986년부터 35년여를 버텨낸 건축물의 기능적 전환, 건물을 구성하는 프로그램의 전환, 그리고 무엇보다 진보적 리모델링을 통한 이 거리의 분위기 전환을 꾀하며 건축가를 찾는다.



리모델링을 위한 건축가의 일은, 입혀 내야 할 새로움을 분주히 찾는 것이 아닌, 오히려 오래 전 이 건축을 행했던 과거의 건축가가 남기고자 했던 건축적 유산을 느긋하게 찾아 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현장을 찾은 우리는 형형색색의 간판과 과장된 활자에 가려져 있던 이 건축물의 낯선 제스쳐들을 발견해 나간다. 도로와 길게 면하며 건축이 마치 하나의 ‘거리입면’을 구성하게 되는 입지적 특성을 살려, 거리를 무심히 걸어가는 보행자의 무던하고 담담한 보행 리듬을 닮은 아치형 창호를 병치시킨 입면은 무척이나 매력적인 유산이었다. 건축물의 입면, 게다가 이처럼 길게 펼쳐진 상가건축의 입면을 동일한 9개의 기하학적 기호만으로 채워낸 점은 1986년의 이 도시에선 꽤나 파격적이고 모던한 시도였을 것이다. 이 개구부들은 자세히 들여다 보면 완벽한 아치가 아닌 장방형 개구부 위 곡선의 일부, 즉 아크(arc)를 앉힌 미완의 아치(arch)인데, 40여년 전 철근콘크리트구조로 이러한 형태의 개구부를 만들어 내고자 했던 당시 건축가의 위대한 도전장 앞에선 그 누구의 비평도 무효한 것일테다. 이 곡면은 총 3단으로 계단식 들여쌓기를 통해 치장과 깊이감을 더했고, 특히 출입문으로 사용된 2개의 개구부는 거의 완벽한 아치(arch)의 비례를 가지고 있어 눈여겨 볼 만 했다. 이 출입부에는 돌출된 벽감형의 창호가 양립했고 각 층간 띠장은 붉은 기와 처마를 덧붙여 당시 건축가들에게 중요한 과제였을 전통의 계승과 혼용에 대한 고민도 살펴볼 수 있었다. ‘모퉁이 편의점 건물’ 정도로 통했을 이 흔한 건물의 귀한 자산들을, 새로운 이야기에 조심스럽게 녹여 내면서, 동시에 새로운 시대의 요구에 충실히 대응할 수 있는 생명력을 부여하는 과제가 우리, 즉 현재의 건축가에게 주어졌다.



시그니처의 발견, 그리고 은일적 재구성

숨겨져 있던 이 건축의 시그니처(signature)를 발견한 이상, 이 형태미를 더 이상 숨을 곳 없게끔 드러내 밝혀 주어야 함은 건축가의 당연한 선택이었다. 기존 건축물의 저층부는 큰 틀에서 그대로 보존하되, 아크와 아치의 연속만이 저층부의 유일한 언어가 될 수 있게끔 부차적인 요소들을 정리해 나갔다. 적벽돌로 세심하게 쌓아 낸 곡면의 개구부가 훼손되지 않게끔 기존 건축물의 면은 그대로 유지하고, 붉은 기와로 멋낸 처마, 돌출된 벽감 창호, 오래된 개구부 프레임, 낡은 화단 정도를 변경범위에 포함시켰다. 처마는 기와를 철거하고 돌출부를 커팅해 무채색으로 도장되게끔 계획했고, 벽감 창호는 철거하되 새로운 적벽돌로 채워내 기존 창호의 형상이 흔적으로 남게 했다. 화단과 계단 등 기단부에 부설된 요소까지 지워내고 나니 닫힌 벽과 열린 개구부, 벽돌의 면과 아치의 행렬만이 남았다. 개구부의 형태적 특성과 무관하게 여닫음의 편의만을 위해 설치되었던 기존 창호 프레임도 최대한 통창으로 변경하고, 아치의 외곽선을 더욱 선명하게 보여 줄 먹색 프레임과 빗물을 흘려보내 줄 프레싱 까지 새로이 계획해 기존 건축물의 아이덴티티를 살리며 지속가능한 기능성까지 확보했다.


ⓒ Jisu Choi



1986년과 2022년 사이의 어느 즈음, 이질적인 재료로 쉽고 빠르게 증축된 3층은 전면 철거하고 새로운 볼륨을 만들어 내기로 하였다. 장방형 건축물의 양단부는 부피를 덜어내고 테라스를 형성해 거리와 소통하면서도 가로축에 여유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계획했다. 이렇게 덜어낸 만큼, 한층 더 쌓을 수 있게 되며 고층부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새로운 디자인 메시지가 요구되었다. 저층부의 아크와 아치라는 기호학적 특성을 직접적으로 모방하지 않으면서도, 이러한 시그니처를 간접적으로 계승시켜 현대적으로 개념화 할 수 있는 시도가 필요했다. 그러한 조심스럽지만 과감한 시도는 깊이 방향으로 눕힌 아크의 수직적 확장과 수평적 병렬이 만들어 낸 이중외피를 통해 구현되었는데, 저층부의 개구부가 그러했듯 동일한 기호이지만 너비가 다른 몇 가지 단위의 수직 곡면을 연속적으로 병치시켜 하나의 물결과도 같은 외피를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저층의 적벽돌 외벽이 시선을 허용하거나 불허하는 이분법적 태도의 것이라면, 고층부를 감싸는 아크의 물결은 익스팬디드 메탈로 패브리케이션 해 그 안의 건축과 공간을 유연하게 보여주는 은근한 존재가 될 수 있게 하였다. 설계 과정에서 연속되는 피치(pitch)의 간격, 메탈 페브릭의 개구율, 아크와 아크 접속부의 디테일 등을 목업(mock-up)하며 치열하게 고민하였지만, 그 치열함이 형태를 드러내고자 함이 아닌 은일(隱逸: 세상을 피하여 숨다)하게 깃들게 하기 위한 것이었기에, 그 과정의 아이러니가 우리 건축가들에게는 ‘우리만 아는’ 숨겨진 재미이기도 하였다.



새로운 용도, 기능을 위한 합리적 재구조화

건축을 다시 쓰고, 생명을 연장하는 일은 건축의 피부와 피복을 다듬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이보다 건축의 뼈대와 계통, 내부기관을 새로운 목적에 맞게 변경하고 수명을 늘리는 이성적, 합리적 계획은 건축가에게 주어진 가장 기본적인 직능이기도 하다.

버티컬 아크의 기존 내부공간은 크게 2개 공간으로 나뉘어 져, 각각의 내부계단을 각기 가지고 있었다. 증축된 3층 공간은 후면에 달아맨 별도의 동선으로 진출입 되고, 자그마한 지하층 역시 따로 마련된 계단으로 진입하는 등, 하나의 건물임이 무색하게 철저히 임대단위의 편의를 위한 개별적 접속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기존 건축물을 구성하던 프로그램의 전환을 통해 도시에 새로운 거점이 되길 희망했던 클라이언트의 운용 목적에 부합하도록, 건축물의 중심부의 바닥판을 걷어내고 엘리베이터와 제작계단을 삽입하였다. 소위 ‘코어(core)’를 형성해 준 것인데, 이를 통해 코어를 향한 주출입구가 정의되어 보행 접근에 위계를 형성하고, 어엿한 전이공간과 일원화된 공용공간을 만들어 냈다. 또한 과거 각기 흩어져 사용하던 화장실 또한 이 홀에 면해 집적해 내면서, 임대공간을 최대한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임차인 및 방문객을 위한 기능적 편의성도 고려하였다. 철거 및 개축한 3~4층부는 이중외피에 의지하면서도 볼륨을 정리해 모든 임대공간에서 접속하고 활용할 수 있는 외부공간을 만들어 냈다.



우리는 리모델링의 가치를 공동체적 관점에서 해석하곤 하였다. 다양한 리모델링 프로젝트들을 진행하며, 도시공간 내에서 기존 건축물이 자리하는 방식이 유지된 채 새로운 건축이 ‘재탄생’하는 순간이 도시의 맥락을 유지하고 건축이 환경에 기여하는 매우 의미있는 과정임을 경험해 왔던 것이다. 이에 더해, 이번 프로젝트의 완성을 통해 건축재생의 독립적인 건축적 가치를 절감하게 된다. 과거의 건축가가 전하는 유의미한 건축적 유산을 다시 세상에 드러내는 방법, 그리고 그 바톤을 현재의 건축가가 이어 받고 또 다른 시선으로 읽어 사회에 전달하는 디자인의 과정이,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이어달리기가 될 수 있음을 말이다.




Architect : H2L (with GodotPluto)
Location : Seogyo-dong, Mapo-gu, Seoul, Korea
Client : Private
Construction : Jadam Construction
Photography : Namsun Lee

Project : 2021.10 - 2022.03
Built : 2022.04 -2023.02
Type : Neighborhood Facility
Site Area : 516.9㎡
Site Coverage Area : 216.9㎡
Total Floor Area : 848.8㎡
Building Scope : B1F, 4F
Structure : RC,Steel Structure Strengthen
Finish : Brick, Expended Metal Fabric